중학생 아이들을 모아 놓고 집회를 할 때, 여자 아이들에게 친구들 중에 담배 피우는 아이가 있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대다수 아이들이 그렇다고 대답했다. 술도 마찬가지다. 중학생 아이들에게 담배 피우지 말라고, 술 마시지 말라고 야단치치만 그 담배와 술을 파는 사람이 누구인가? 어른들이 팔지 않는다면 아이들이 어디서 술과 담배를 구할 수 있겠는가?
자녀가 공부를 조금 잘하고 못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 아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자녀가 무엇을 붙잡고 있느냐다. 자녀가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면 결코 나쁜 길로 빠질수 없다. 그런데 기준이 없기 때문에 주변의 말에 따르는 것이다. 게다가 부모마저 확실한 기준을 제시해 주지 못하고 이리저리 흔들리는 것이 문제다.
어느덧 훌쩍 자라 성인이 된 아들 충만이가 한번은 이런 말을 했다. “아버지, 저라고 술 마시고 춤추러 가고 싶은 유혹이 왜 없었겠어요. 그러나 그런 행동이 하나님과 아버지께 누가 될까 봐 하지 않아을 뿐이에요.” 말씀과 기도라는 분명한 기준과 잣대가 있었기에 감사하게도 아들이 반듯하게 자란 것이다. 이미 항해를 시작되었다. 부모는 자녀와 한 배를 타고 있는 것이 아니다. 부모는 등대 역할을 해야 한다. 폭풍이 몰아치고 해일에 배가 뒤집혀도 등대만 제구실을 똑바로 한다면 아이들은 바른 길로 찾아오게 되어 있다.
[나를 팔아 천국을 사라]/장경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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